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CF 피오렌티나/역사 (문단 편집) == 창단 == 피렌체의 유력한 귀족 집안 출신인 루이지 리돌피 후작(Marchese Luigi Ridolfi)은 영국여행 도중에 축구라는 스포츠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그는 그 즉시 귀국해 자신의 축구팀을 만들기로 하고, 당시 피렌체에 있던 두 개의 작은 클럽인 팔레스트라 진나스티카 리베르타스(Palestra Ginnastica Libertas)와 클루브 스포르티보 피렌체(Club Sportivo Firenze)를 합병해 새로운 축구팀을 만들었다. 1926년 8월 26일의 일이었다. 새로 생긴 클럽의 이름은 '[[꽃]]'을 뜻하는 [[라틴어]]인 '피오렌티나(Fiorentina)'로 정해졌고 비아 벨리니(Via Bellini)에 있는 경기장을 사용하기로 했다. 또한 유니폼은 기존의 두 클럽의 색상을 조합한 빨간색-흰색이 채택되었는데, 지금의 보라색(Viola) 유니폼으로 바뀐 것은 1929년이었다. 보라색은 피렌체의 꽃인 [[백합]]을 본딴 색으로 백합은 [[피렌체]]의 문양에도 나타나 있다. 경기장은 피오렌티나의 고위층 출신으로 이탈리아 축구협회장과 UEFA 회장직을 역임한 아르테미오 프란키(Artemio Franchi, 1983년 8월 12일에 교통사고로 사망)를 기리기 위해 1991년 11월에 그의 이름이 경기장에 헌액됐다. 완공 당시에는 [[파시스트]] 지도자의 이름인 조반니 베르타(Giovanni Berta)라고 불리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부터는 '피렌체 공설 운동장(Stadio Communale di Firenze)'이라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1931년 9월 13일에 초대 구단주 리돌피에 의해 완공되었으며, 그후로 계속 피오렌티나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47,290명 수용의 축구전용구장이다. 34년과 90년에 걸쳐 두 번의 월드컵을 치루어낸 역사가 있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후 2001/02 시즌에 강등당할 때까지 두 번의 강등을 제외하고 수십 년간 세리에 A 붙박이 팀으로 자리잡았으며, 그동안 피오렌티나는 2번의 리그 우승과 6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일궈냈으며, 이탈리아 팀으로는 최초로 [[UEFA 컵 위너스컵]]에서 우승함으로써 사상 첫 유럽 클럽 대항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